한껏 누렸던 디지털노마딩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 회사는 원격 근무가 자율 선택이었다. 규모가 있는 IT 기업들에서 하는 무늬만 원격 근무처럼 꼭 집에서 혹은 정해진 장소에서 접속해서 업무를 하지 않아도 됐다(지금도 그렇다).

업무 시간 또한 (사전 조율하면) 완전한 자율이라 9-to-6 대신 언제 일하든 본인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이 카테고리 여러 글에서 적은 것처럼 하노이, 호치민, 세부 등 다양한 곳에서 원격 근무를 했다. 워케이션 다니면서 내 집 임대하기를 통해 에어비앤비 수익도 몇 푼 안되지만 얻어보고 재밌었다. 그러다가 텍사스에 가게 됐다.

아름다운 Texas A&M 캠퍼스

기대와는 달랐던 텍사스

미국 - 컬리지스테이션 (1)에서 적었던 것처럼, 박사 과정을 하는 친구네서 두 달간 머물기로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을 시작했다. 처음 한 달은 모든게 새롭고 흥미롭고 좋았는데, 그 뒤의 한 달은 조금씩 적응하기가 어려워졌다. 되돌아보니 아래와 같은 이유들을 꼽을 수 있다.

1. 외로움

미국 직전에 다녀온 베트남에서 사실 어느 정도 징조가 있었던 것 같다. 하노이와 호치민은 2주씩 갔었는데 매일 새로운 것들이 있었고, 조금 외로움을 느끼려던 때가 되면 적당히 귀국해서 외로웠다는 생각을 잘 못 했었다. 그치만 2달이라는 기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대학교가 주가 되는, 도시 이름에도 College가 들어가는 곳이라 그 곳의 대학과 직접 관계가 없는 나에게는 어떤 네트워킹이 없었다. 친구를 따라서 일요일에 한인 교회에 나가봤지만 그 날뿐이었다.

이제는 가족이 생겨서 함께 간다면 어디를 가도 외롭다는 생각은 안 들 것 같은데 그 때는 달랐다. 마지막 1-2주 정도는 한국으로 가고 싶었다. 대학원생 친구는 마침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나를 크게 신경써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뒤쪽 한 달은 미국 대학교의 빠른 여름 방학으로 인해 캠퍼스도 이전보다 많이 썰렁해져서 우울감이 더 커졌다.

2. 개발 실력 부족

미국으로 갔던 2019년엔 내가 개발자로서 일한지 만 2년이 채 되지 않았던 때다. 미국에서 다른 시간대에 근무를 하게 돼서 나름 큰 프로젝트를 맡았다. 한국 업무시간에서 담당하던 긴급 대응 순번을 처리하지 않으니 롱트랙 업무를 맡았던 것이다.

지금처럼 클로드 코드가 있으면 좋았으련만, 개발 공력이 부족하여 개발 중간에 문제를 마주하면 꽤나 오랜 시간을 잡아먹었다. 미국에 근무하는 대표님(개발자)이 있긴 했는데, 선뜻 질문하기엔 또 어려운 사이였기 때문에 혼자 끙끙댄 시간이 많았다. 가끔 화상회의를 통해 트러블슈팅을 하긴 했는데 개발 일정은 많이 늘어졌고, 거기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3. 계획 부족

친구만 바라보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차가 없으면 절대로 이동할 수 없는 미국 특성 상 이동의 제약이 있었다. 혼자 딱히 뭘 해야할지도 모르니 업무 외적인 시간에도 컴퓨터로 시간이나 죽이면서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위에서 적은 ‘외로움’과 같은 이유라고 볼 수도 있겠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지내야 하는데, 그런 교류에 대한 계획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어느 주말 대학교 도서관에서 친구와 화상으로 소식을 주고 받다가 문뜩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그리운 건

이제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려나, 외로움이란 감정을 그 때보다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려나. 지금은 좋았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미국 대학에 앉아서 일을 하고, 미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하는 사소한 것들도 말이다. 실제로 정말 기억에 남을만한 것도 많았다. 그랜드캐년을 보러 친구와 차를 번갈아 운전하고, 시골 모텔에서 자고, 텍사스 바베큐를 먹고 그런 기억들.

텍사스에 언제 또 가볼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중에서도 ‘컬리지 스테이션’에 갈 일은 아마 평생 없을 것 같다. 텍사스는 그래도 다시 가보고 싶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텍사스로 이사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