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교환학생 시절,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자 유럽 친구들은 각자 본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텅 빈 플랫(기숙 아파트)에서 몇날 며칠을 미드만 보다가 벨기에 친구 빅터네를 가기 위해 여정을 떠났다. 룩셈부르크를 며칠 둘러보고 가는 일정이었는데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얼굴 한 쪽 뺨에 여드름 같은 게 5-6개가 나더니 진물이 나고 상태가 안 좋아졌다. 그 상태로 벨기에 하셀트(Hasselt)로 가서 친구 빅터를 만났다. 친구 어머니가 병원에 데려가주셨는데 포진의 일종이라고 진단받았다. 혼자 유럽에서 병원 못 갔을 것 같은데 참 감사했다.
친구네서 하루 자고 크리스마스 아침이 됐다. 빅터네가 큰 집(우리나라 첫째집?)인지 많은 가족들이 모였다. 사진은 몇 명 안나왔는데 내 기억에 20명은 족히 넘었다. 가족들과 한 명씩 인사를 나눴다. 크리스마스에 웬 동양애가 와있으니 다들 신기해했다. 할머니들도 몇 분 오셨는데 프렌치 비쥬로 환영해주셨다. 나는 한 쪽 뺨을 보여드리며 여기는 뭐가 났다고 하니 멀쩡한 반대쪽에 2배로 키스하고 안아주셨다. 볼에 피부병이 생긴 낯선 손님인 내게 그리 해주실 줄은 몰랐다. 몇 안 되는 나의 크리스마스 파티 중에서 아직까지도 가장 따뜻했던 경험이었다. 몸 둘 바 모르는 환대에 마음이 뭉클했다. 벨기에 문화를 잘 모르지만 할머니 한 분은 내게 용돈도 주셨다. 그것도 봉투에 넣어서.
벨기에에 오기 전까지 마음이 허전했었다. 친구들이 없는 플랫을 며칠 동안 지킨 게 문제였다. 왁자지껄하던 곳이 너무 고요했었다. 룩셈부르크는 괜히 갔다 싶을 정도로 딱히 할 게 없고 휑한데 아프기까지 했고. 그때의 허함이 벨기에 친구집에서 채워졌다. 따뜻한 추억. 사실 교환학생 시절 주로 어울리던 애들이 프랑스, 스페인 애들이라 그 친구들의 스킨십도 상당했는데 이건 나중에 따로 적어보기로 한다.